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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는 물론 논상인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있다고 반일사상을 고취하고 항쟁 준비를 하였으며 기후 동지 33인을 주축으로 각 면 이장에게 격문을 보내어 10월 5,6일 면민 약 400명을 모집하여 화승총과 죽창등으로 전선을 절단하고 중문경찰서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 소각하고 주재소원을 포박구라 상해를 입히고 갇혀있던 주민을 풀어주었으며 만약 일인을 살해하면 제주도민에게 보복이 더 클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항쟁은 결국 일경들의 대규모 병력으로 맞서 항쟁은 끝나고 말았다. 이 항쟁으로 많은 사람이 일경에게 잡혀 목포검찰로 압송되여 김연일 스님은 징역 10년 김신해 선사는 징역 3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불교계의 항일운동은 초기 의병과 3.1만세운동만해 한용운 선생이 사찰방을 조직한 것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제주도 법정사 항쟁은 불교사에서는 큰 의의를 지닌다. 제방선원에서 용맹 정진하시다가 제법 실상의 인연법을 득오하시고 문득 고향 산천을 불각에 생각하든차 항쟁 후 심한 고문과 옥고 후 유증으로 귀향하여 기계면 문성동 무학사에서 개명 포교하시다가 1939년 음 6월 12일 열반(涅槃)하시였다. 서기 1998년 8월 15일자로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이 고귀한 독립유공 선사의 얼을 후세 천추만대 알리고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