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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는 3.1운동을 전후하여 일제에 항거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많은 독립지사들과 해외로 망명하여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강력한 무장 조직체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3.1운동 직후 중국 동북방 길림성에 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설립되었으며 그중 1919년 11월 9일 길림성 파호문 밖 중국인 반모의 집에서 독립 비밀결사의 결성을 숙의한 결과 11월 10일에 후일 일제에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 된 의열단을 결성하였으며 13명의 단원 중 담력과 의리가 두터운 단장에는 김원봉이 추대되었으며 조직 당시 선생께서는 의열단의 인장 고안과 배후 조종을 절대적으로 행사하여 의열단의 고문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당시 독립단체들의 미온적 활동을 개탄하고 급진적 운동을 표방하여 헌신적 독립운동단체로서 후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부대로서 의열단을 조직한 것이며 비밀결사를 통한 민족독립의 성취를 목표로 하였으며 선생께서는 의열단 조직 당시부터 고문으로서 모든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1923년 1월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창조파와 개조파의 분열상황에서 의열단의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게 된 것도 선생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한 신채호 선생과 함께 양대 지주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신채호 선생보다 앞서 의열단의 지도노선을 지시하여 대한민국 독립투쟁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시어 이에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