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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노동야학과 민중교육
일제의 통치에 맞선 조선 민중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교육은 필수였다. 그 중 노동자, 무산자들에 대한 교육열기가 높았다. 보통학교 입학이 어려울 만큼 가난했던 아이들과 성인이 된 노동자들까지 낮에 일하고 밤에 일하는 노동야학에 참가했다. 1920년 이후 급격이 늘어난 울산야학은 울산 전 지역 최대 100곳이 문을 열었는데 그 중 대다수가 노동야학이었다. 노동야학 교사들은 청년회에 속해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들이 주도했다. 야학 수업은 문맹을 깨치기 위해 조선어를 가르치고 식민지 현실을 담은 역사교육과 노동 속에 가져야 할 기본역량을 갖추는 교육을 진행했다. 그리고 야학을 통해 배움을 얻은 이들은 소년회, 청년회, 노동조합, 농민조합 등에 참가해 민중교육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30년 이후 일제는 노동야학과 민중교육에 대한 탄압을 전면화 했다. 결국 1935년에 이르면 야학 숫자는 4분의 1로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