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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희(魚允姬)
생 졸 1880.06.20 ~ 1961.11.18
운동계열 3.1운동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
충청북도 충주 출생.
어현중(魚玄仲)(어헌우 魚憲愚)의 무남독녀로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16세에 결혼하여 3일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죽었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개성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1910년에 북부교회 교인이 되었다.
3.1운동당시 그는 서울에서 송달된 독립선언서를 개성(開城) 일대에 배포함으로써 개성의 만세운동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수행했다. 기독교 남감리파의 전도사인 그는 1919년 2월 26일 개성읍내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好壽敦女子高等普通學校) 기숙사에서 개성 충교(忠橋) 예배당 유치원 교사인 권애라(權愛羅)로부터 독립선언서 80여 매를 받아 개성 지역 주요인사들에게 전달하였다. 아울러 그는 만세운동을 추진하면서 서울에서 배포한 것과 같은 독립선언서를 2천 부 정도 인쇄하여 읍내 각지에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신관빈(申寬彬)과 함께 읍내의 만월정(滿月町)·북본정(北本町)·동본정(東本町) 등 각 거리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이로써 개성에서는 3월 3일에 개성 호수돈여자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여기에 1천 5백 명의 시민이 만세시위에 참가함으로써 대대적인 시위행진이 이루어졌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일경에 붙잡혀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