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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도 독립전쟁 지도자 석주 이상룡 농업을 통한 경제안정, 교육기관 설립, 독립군 양성이란 구체적 목표로 자치기구 경학사를 조직하고 이상룡이 사장에 취임했으나 풍토병과 대흉년으로 동포들이 이탈하고 일제의 방해로 1년 만에 좌절되었다. 석주 이상룡은 임청각을 매도하겠다는 배수의 진으로 문중으로부터 독립자금을 지원받아 부민단을 새로 조직하고 나아가 남만주 13개 단체를 통합한 100 만인의 한족회를 발족하여 안정적 독립자금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1919년 4월 유하 통화·홍경·환인 집안 등지의 한인 지도자들이 모여, 남만주 독립운동의 총본영인 군정부를 조직하였다가 1920년 3월 상해 임시정부의 요청에 따라 서로군정서로 개편하였다. 서로군정서는 신흥중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봉오동 청산리 전투 등 많은 전투에서 큰 성과를 이루어 냈다. 1922년 8월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한교민단 대한광복군총영·평안북도독판부 등 이른바 8단 9회를 통합하여 보다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대한 통의부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