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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조선의용대의 창립과 중국 화북지역에서의 활동 27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는 1937년  7월 발발한 중일전쟁이 전면전 양상 으로 전개되던 시기,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창설된 무 장항일부대다. 1938년 10월 10일  중국 호북성(湖北省) 한커우(漢口)에 서 정식으로 출범한 조선의용대는 약  3년 8개월간 중국 전역에 걸쳐 활동 하였으며, 그 범위는 13개 성(省)과 6 개의 중국 국민혁명군 전구(戰區)에  이르렀다. 대원들은 주로 일본군·중 국 친일정권의 괴뢰군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과 유격전, 그리고 중국군과  민중을 대상으로 한 선전 및 정치훈 련을 주된 임무로 수행하였다. 그러 나 1942년 7월 이후, 한국독립운동  진영 내부의 정치적 변동, 국공(國共) 관계의 단절, 중일전쟁 전황 변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조선의용 대는 중국국민당 관할지역의 한국광 복군과 중국공산당 관할지역의 조선 의용군으로 분화하게 된다. 조선의용대의 창립과 중일전쟁 참가 의의 조선의용대의 출범은 한국독립운동의 중대한 전환점을 형성하였다. 이는 중국 관내(關內)지역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인 무장독립운동 부대 로서, 그 활동을 기점으로 한인들은 산해관(山海關) 이남의 중국 본토에 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 하였다. 대원들은 중일전쟁이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는 격동기 속에서 주요 전선·전투마다 파견되어, 중국군 장병들과 함께 최 전방에서 피를 흘리며 항일전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실전 경험과 희생 을 토대로 구축된 공고한 한중연대는 한국독립운동을 단순히 한일 양 국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반파시스트 전선의 핵심 축으로 부 상시키는 정치적·군사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1938년 10월 10일 발표된 「조선의용대 창립선언」은 이 단체가 출범 하게 된 배경과 한인의 중국 항일전 참가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창립선언」은 1938년 당시 국제정세를 “동방의 강도 일본 파시스트 군벌”이 아시아의 병탄과 세계 정복을 기도하며 중 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일본군의 우 한(武漢) 진공을 ‘가장 야만적이고 잔학한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 음을 비판하며,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재중 한인혁명가들이 중국 항 전에 직접 참가하기 위해 조선의용대를 결성하였음을 언급하였다. 즉 「창립선언」은 중일전쟁, 그 중에서도 우한회전(武漢會戰, 1938.6~10) 이 조선의용대 창설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또한 「창립선언」은 쑨원(孫文, 1866~1925)의 ‘전세계 약소민족 연합 론’을 환기시키면서, “중국혁명이 완수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민족에 대한 일제의 압박이 강화되고, 조선민족이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에 중 국에 대한 일제의 침략이 강화된다”는 인식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중국 혁명은 곧 대일항전을, 조선혁명은 곧 민족독립운동을 지칭하며, 양자 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라는 핵심 목표를 공유하는 불가분의 관계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한인 혁명가들이 관내지역의 중국 항일전쟁에 직접 참가하는 정치적·전략적 정당성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