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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 고주리 학살사건 1919년 3월 1일 발안 장날, 1,000여 명의 군중들이 발안 장터로 몰려가 만세를 외쳤으며, 일본군 진압부대가 휘두른 칼에 시위대가 사망했다.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경기도 경무부에서는 검거반을 파견해 시위 진원지 역할을 한 마을들을 습격하고 방화했다.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군 중위 이라타 도시오는 발안 주재소의 일본인 순사와 한국인 순사보인 조희창, 발안에 사는 일본인 사사키를 앞세워 제암리로 갔다. 그리고는 주민 가운데 15세 이상 남자를 교회에 모이게 하고 출입문을 잠근 후 집중사격을 했다. 일제는 학살만행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사격을 마치고 예배당에 짚 더미와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그로인해 2명의 부인을 포함하여 23명이 그곳에서 순국했다. 이라타 도시오 중위는 그 후 제암리 너머 고주리로 가서 김흥열의 일가족 6명을 추가로 참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