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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옥 여 염행채동 상 뽕뽑 용인시 처요믿 앙지면 평창리 임옥여(任玉‘따, 1872∼1907)는 용인 양지띤 평창리 사람으로 본명은 경재댈 많 )이 다. 그는 누대로 무관장을 지낸 풍천 임씨의 후예이다. 1907년 당시 농상공부 주사 직을 맡고 있었으나, 고종 의 강제퇴위를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7년 8월 이금풍 주창룡 신규-희 등과 함 께 이천에서 창의하여 스스로 좌익장 을 맡아 이천에 주둔한 일본기병대륜 급습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8월 중순에는 이천 우편취급소와순사분파소를습격히였고 광주실촌면떠付面)에서 원주의병대와합 류해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임옥여는 포군 70여명을 모집해 용인 굴암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는 한편 이천. 여주 안성 양평 등지에서 일본군을 습격해 큰 전과를올렸다 이어 1907년 9월 용인 원삼면 문촌리 고초골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광주 상림(尙林)과 용인 백암 등지에서 유격대 활동을 펼쳤다. 임옥여 부대는 인근 지역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펼쳤는데 정주원뺏끼렘‘ 폐 부대와 양지 · 죽산일대에서, 김봉 24 . 빌로 찾아가는 용E 욕럼운동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