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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농민항쟁 기념탑 안내문
조선시대 말기에 심해지자 이에 대항해 주민들이 장시를 철거하고 집단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진주농민항쟁은 1862년 2월 14일 덕산장 공격을 계기로 진주목 전 지역으로 확산되다가 2월 23일 농민군이 해산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이 항쟁의 핵심세력은 농민 그 중에서도 초군(樵軍)이었다. 이 항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로는 양반 출신인 류계춘(柳繼春) 등이 있었다. 이 항쟁을 계기로 농민항쟁은 삼남지방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단순히 수탈에 대한 불만에 의해 폭발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농민층의 사회운동은 더욱 거세어져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이어지고 이어 일제시기 농민운동으로 발전해 간다. 이 탑이 세워진 곳은 당시에 수곡장이 서던 곳이다. 무실(수곡)장터는 항쟁이 시작되기 전인 2월 6일 많은 대중들이 도회(都會)를 열어 항쟁의 방향을 철시와 시위로 결정하고 이 여론을 주위로 확산시켜 나간 중요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