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page


27page

1919년 3월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퇴학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1920년 제주도로 귀향하여 신유의숙(辛酉義塾)을 설립하고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활동에 힘쓰다가 일본 도쿄로 유학하였다. 일본유학 중이던 1926년 7월 조선민중의 구제를 목표로 한 협동조합운동사의 발기인으로 참가한 이후 귀국 후에도 동 단체의 활동에 주력하여 1929년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30년대 초반에는 협동조합운동사 활동의 실천방향에 대하여 신문과 잡지에 다수의 글을 게재하였다.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자 1929년 동 회의 선전부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0년 1월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1년 7월 중국에서 발생한 ‘만보산사건’과 관련하여 이 사건을 널리 알리고 일제를 규탄하고자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48일 동안 구금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