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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신수습및 유해발굴과 안장 1차) 1950년 8월 20일 새벽 섯알오름 근처에서 소를 관리하던 대정읍 상모리 거주 유계돌씨가 학살현장을 목격하고 바다로 고기잡이 가던 상모리 이경익씨와 정공삼씨에게 집단학살 사실을 알리자 이 두분에 의해 유가족들에게 비보가 전해졌으며 전갈을 받은 300여명 유족들이 학살현장에 집결하여 시신 27구를 수습할 무렵 경찰들이 공포를 쏘며 무력적으로 해산을 유도하자 겁에 질린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며 수습했던 시신을 구덩이에 원상태로 회복시키고 해산했다. 2차) 유족들은 상시 경찰의 감시와 연좌제에 의해 입신양명의 길이 막힌채 절치부심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중 만벵디 유족들은 1956년 3월 30일(음력 2월 19일) 새벽을 이용 60구의 유해를 발굴 만뱅디 공동장지에 안장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조일손 유족들이 4월 28일 학살현장에서 유해발굴을 시도 하였으나 무장군경의 저지로 또다시 실패했다. 3차) 그후 유족들의 과계당국에 꾸준한 탄원과 청원에 의해 유해발굴이 허용되자 동년 5월 18일 시신이 수장된 물웅덩이에서 양수기(상모리 좌용진 소유)로 물을 퍼내어 149구의 유해를 발굴하였으며 그중 치아와 옷 유품등으로 신원이 확인된 17구는 각자의 묘지로 옮겨지고 자타식별이 되지않는 유해는 준비된 칠성판위에 머리뼈, 팔뼈, 다리뼈를 132구로 구성하여 대정읍 상모리 586-1번지에 안장하고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 명명하였다. 한편 1961년 고철수집상들이 섯알오름 학살터 만뱅디 희생자발굴 장소인근에서 작업도중 우연히 당시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2구를 발굴하게 되자 그들은 정중히 예를 갖추어 섯알오름 남사면에 매장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음(고증자: 전 도의회 부의장 강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