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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의 회원으로 활약했다. 조선국권회복단은 1915년 2월 대구에서 경상도 지역의 중산층 인사들이 조직한 독립군 지원단체였다. 인적 구성이나 활동에서 계몽주의적 성향을 지녔던 조선국권회복단의 인사들 중 박상진·정운일·김재열 등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년 7월 풍기광복단과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였다. 이러한 대한광복회는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군자금 조달에 의해 국내의 혁명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함으로써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던 혁명단체였다. 그리하여 우선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는데, 이때 김재열은 정운일·최병규 등과 함께 대구 부호 서창규에게 군자금을 수합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로 인하여 6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던 그는 출옥한 뒤에도 대한광복회가 추진한 친일파 처단 활동에 참가하여 권총을 김한종·채기중 등에게 제공함으로써 거사를 성공케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