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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復團 略史(광복단 약사) 광복단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합된 뒤, 독립을 위한 혁명전사를 양성하고, 무력으로 국권회복을 이를 목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병 출신 지사들을 주축으로 풍기에서 만들어진 독립운동단체이다.1913년 3월 풍기서부 한림촌에 사는 채기중을 중심으로 류장열(고창) 한훈 김병열(이상 청양) 김상옥(서울) 정운기(괴산)장두환 유창순 조종철 류중협(이상 천안) 정만교, 황상규, 문봉래, 채경문(이상 풍기), 강순필(봉화) 정진화 성문영(이상 예천) 이수택, 손기찬(이상 칠곡)등이 국권회복을 위하여 무장비밀결사인 풍기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25년 대구의 박상진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조선국권회복단과 발전적으로 통합한 후 대한광복회로 조직을 학대하고,“우리는 대한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원수 일본을 완전히 몰아내기로 천지신명에게 맹세한다.”라는 선언문을 작성 피로써 맹세하고, 다음과 같은 실천 방안을 세워 활동하였다.1.부호의 의연금 및 일인이 불법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무장을 준비하고,2.남북만주에 군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사를 양성하며,3.종래의 의병 및 해산군인 만주 이주동포를 소집하여 훈련하고,4,중국 러시아 등 여러나라를 통하여 무기를 구입하며,5.본부를 상덕태상회에, 한.만 각 요지와 북경 상해 등에 그 지부를(여관 곡물상. 광무소등)두어 연락기관으로 하며,6.일인고관 및 부일반역자를 수시로 처단하는 행형부를 두며,7.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인섬멸전을 단행하여 최후의 목적 완성을 기한다.대한광복회는 그 조직을 군대식으로 편성하여 박상진이 국내의 총사령이 되고, 이석대가 부사령으로 만주지방을 담당하였는데, 이석대가 순국하자, 김좌진이 부사령으로 활동하였다. 1916년 7월 의병장 허위의 선봉장이었던 권백초(상석)를 밀파하여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칠곡의 친일부호 장승원을 응징 사살하려다 실패하고, 8월에정운일,김진만,김홍두,최병규,김진우,등도 대구 부호 서우순에게 군자금을 모금하려다 실패하여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를 광복단의 대구 권총사건이라 함)1916년노백린,김좌진,신대현,윤홍중,신두현,윤치성,박성태,김정호,권태진,임병한,윤영중,기명섭,이현등유명한 투사들이 참가하면서 조직을 재정비하여 대한광복단으로 개칭하였다.1917년 기호. 호남. 관동. 관서지방의 애국지사 장두환, 최만식, 김재창,김경태, 황학성,김상준,이재덕,정태복,성달영,강석주,조종철,정우풍,김원묵,김재철,김재풍김동호등이 참가하여 명실공히 거국적인 독립운동단체로 자리하면서 회원이 수백명에 이르게 되었다. 박상진,김한종,채기중,우재룡,김좌진 등 간부들은 서울 남대문 밖 어재하의 남일 여관에 모여 본격적인 투쟁방안을 협의하여, 노백린은 상해로 김좌진,박성태는 만주로 박상진,채기중은 영남지방 장두환,김한종등은 기호지방 이관구 는 황해지방 김홍두,한훈은 호남지방, 조현균은 평안지방을 당하여 각 지방의 부호들을 조사한 후 격고문을 보내어 의연금을 권유하는 동시에 일제가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무기구입을 하기로 하였으며, 서울은 어재하 인천은 이재덕 대구는 박상진 경주는 최준, 괴산 엄두견 영주은 권영목 풍기는 채기중, 박제선을 연락책으로 임명하여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