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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새겨진 배영석목사는 주후 1905년 곡성에서 출생하여 기독교에 입교한후 항일의 뜻을 같이한 3인의 동지가 기미년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31상회를 경영하면서 향리민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일제에 항거하였다. 그러나 왜경의 감시때문에 정든 고향을 떠나 강진으로 옮긴후에도 그들의 탄압은 오히려 가중되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조국광복의 단심을 간직한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도암지방교회와 미야반납교회에서 구회하였고 8.15해방후에 1946년 3월부터 강진읍교회 목사로 시무하면서 혼란했던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선교와 반공에 압장섰다. 19년 뜻하지않은 6.25사변이 일어났으니 공산군의 불법남침으로 이땅은 동족상잔의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7월 19일에는 이곳 강진에 침입하게되어 교우들이 피난할것을 간곡하게 권유아였으나 양떼를 이리들의 소굴에 버려둘수없는 목자의 심정에서 이를 뿌리치고 악랄한 공산치에에서도 끝까지 교회를 지키면서 흩어진 교인들을 보살피다가 8월6일 강진시장에서 천인이 공노할 공산도배의 만행으로 끝내는 그들의 흉탄에 향년 45세를 일기로 순교하였으니 이에 어찌 비통하지않으랴. 그러나 뿌려진 복음의 씨가 순교의 피로 인하여 더욱 많은 열매를 맺어 강진읍교회는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중인이 되는 교회로 성장발전하였으니 순교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청년회와 교우들이 성금을 모아 여기에 배영석목사 순교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 땅에 한룩속히 민주통일이 성취되어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지기를 기원하여 거룩한 순교의 뜻을 먼 훗날까지 이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