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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그 올바른 맥을 이어가게 함에 있어 투철한 애국심과 굳건한 지조 그리고 이의 과감한 실천으로 일관한 분을 우리는 지사라 일컬으니 여기 그 실증을 둔암공의 행적에서 엿볼수있어 오직 경탄을 금할수 없다. 근안컨대 고의 성은 그념김씨요 휘는 형종이며 둔암으 기호이다. 그 선계는 신라 경순대와후로 조선초엽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정충대절 사육신의 수반인 시 충예 휘 문기 호 백촌선생의 17세손이다. 공의 10대조 휘 선귀공이 진주 개심으로 입향정착한 이후 근400여년을 세거로 계승하니 벌족의 후예로소 공은 고종계미년 (1883) 12월 3일 선고 죽오공의 장윤(長胤)으로 향제에서 출생하였다. 유시부터 외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강직하여 매사에 진취적사고로 장성 대기로 촉망되었으며 엄친 죽오공의 훈도로 시서를 습득하고 나아가 애산 정선생 문하에 이학을 심공(深攻)하니 일취월정 그 박현강기(博覽强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으나 불행히도 관여(冠余)에 국치를 당하니 정운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고장으로 되돌아와 암울한 은거생활에 돌입하였다. 왜정의 포악은 일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