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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일생)을 日帝(일제)의 尾行(미행)과 監視(감시)를 당하면서도 農民運動을 繼續(계속)하였고 光復後(광복후) 農林部(농림부)에 在職時(재직시)에는 農地改良政策(농지개량정책)에 참여 많은 業績(업적)을 남겼다.
特히 우리 陰峰面內(음봉면내) 數多(수다)한 貯水池(저수지)가 그 때 선생께서 힘써 만드셨던 것이다. 老衰之年(노쇠지년)에는 많은 農土(농토)를 내어 놓아 陰峰奬學會(음봉장학회)를 만들었다.
先生(선생)이 심은 奬學(장학)의 씨앗이 어느 사이 巨木(거목)으로 자라 千枝滿實(천지만실) 아니던가. 1989년에 卒(졸)하시고 이듬해인 1990년 12월 26일에 정부에서는 祖國光復(조국광복)에 끼친 선생의 功勞(공로)를 높이 評價(평가)하여 建國功勞勳章(건국공로훈장)이 追敍(추서)되었다.
아! 장하다 선생의 높은 뜻은 젊은 靑少年(청소년)들이 鄕土(향토)를 아끼고 사랑하는 횃불이 되었도다
이제 선생의 獨立運動(독립운동) 자취를 追慕(추모)하고 農地改良事業(농지개량사업)의 功德(공덕)을 기려 後世(후세)의 龜鑑(귀감)이 되게 하고자 이 碑를 세운다.
이 돌이 썩지 않을 것이니 그 이름 또한 千秋(천추)에 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