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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광목사(1904-1964) #독립유공자 #군위성결교회 제10대 목사 #성결교회재건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보현동 118번지에서 1904년 3월 7일 천기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천세광목사의 본명은 천세봉(千世鳳)인데 해방을 전후하여 세상을 밝게 하라는 말씀대로 살고자 세광(世光)으로 개명하였다. 1924년 교회 청년회장을 맡아 인근 마을 다니며 비안교회를 지교회로 설립했던 공로자였다. 1925년 성서학원에 입학한 신학생으로 1926년 조선왕조 마지막 왕 순종의 국장일에 터진 6.10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룬 후, 석방되었다. 1928년 성서학원을 졸업한 후, 1933년 제 1회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나, 1940년 삼천포교회 재임 때 신사참배반대로 체포되어 7개월간 옥고를 치뤘다. 1943년 5월 성결교회 교역자 총 구속 때 또 다시 체포되어 다른 목사들은 1943년 12월 교단 해산 과 함께 석방됐으나 그는 1944년 2월에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11일 사상예비 검속 때 다시 체포되었다가 며칠 후 해방을 맞아 석방된 애국지사이다. 해방 후 군위교회는 성결교회 중 가장 먼저 재건된 교회이다. 천세광목사는 재흥총회 의장으로 전국 성결교회 재건에 이바지 하였다. 삼천포교회 재임 시 신사참배 반대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룬 후 고향인 군위에 와서 1년 8개월 동안 교회 폐쇄로 흩어진 군위교회의 신자들을 심방하고 그들을 모아 1945년 9월 5일에 감격스러운 해방 기념예배를 드렸다. 그 후 군위교회에서 2달간 목회하면서 군위군의 치안유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해방 후 혼란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등 애국애족의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