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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3·1운동, 강원도 최대 규모로 치열하게 전개 함경도, 3월 초~중순 가장 활발히 ‘조선독립만세’ 고창 대구3·1운동, 3월 8일부터 4월 말까지 몇차례 계속돼 양양군, 일제 군경 총격으로 61명 사상 피해 함경남도, 3월 1일·3일 원산·함흥에서 시작돼 대구3·1운동, 다양한 계층의 민족·민주운동 성격 1919년 4월 초 일어난 양양군의 3·1독립운동은 규모와 내용 면에서 강원도에서 가장 격렬했으며,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대중적 독립 운동이었다. 양양 3·1독립운동은 최대 집결 인원 4,000여 명, 연인원 1만 5,000여 명 이상이 참가했는데, 사망 11명, 부상 50여 명, 체 포 170여 명의 피해를 냈다. 함경남도는 초기 3·1독립운동을 주도한 지역이었다. 1919년 3월 1일 원산을 시작으로 3월 3일 함흥, 3월 10일 단천·북청·신흥·이원 등지에서 대규모 독립만세를 외쳐 3·1독립운동사상 3월 초순부터 중순 시기에 가장 활발히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한 지역이었다. 1919년 3월 8일 큰 장(서문시장)에서 시작된 대구의 3·1운동은 한반도 남부에서 빠른 편이었다. 이를 계기로 3·1운동은 경북으로 파급 되어 5월 7일 청도의 만세시위로까지 이어졌다. 대구 3·1운동은 1919년 3월 8일부터 4월 26일까지 두 달간에 걸쳐 기독교·불교·천도교 등 종교계, 농민·노동자·교사·학생·청년·여성·상인·일반 시민 등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진 전민족적 항쟁의 담대한 여정이었다. Theme 1. 강원도 양양지역 3·1운동의 전개・장경호 Theme 2. 독립만세운동 전개 실상으로 본 함경남도의 3·1독립운동・김진호 Theme 3. 대구 3·1운동의 전개 양상과 특징・김일수 광복 제81주년 기념 특집 ‘3·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