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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05년 8월 12일 박성형 옹과 백남의 여사의 3남으로 때어나 나라와 겨레 사랑이 투철한 민족주의자로서 구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지국장을 역임하면서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을 펼치고 긴간회등을 통한 지역사회의 항일운동과 계몽운동을 수차례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우승시 일장기 말살사건 등으로 수차례 투옥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의 강제공출에 분노한 농민들의 항거에 경찰관을 보호하려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경찰의 오인으로 총격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되었다. 선생과 결혼한 조귀분여사는 신간회와 여성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활동을 하다가 박상희 선생을 만나 결혼하여 소비조합에 근무하면서 시동생인 박정희 대통령의 학비 뒷바라지를 하였다. 박상희 선생이 타계하고 난 뒤에 육남매를 키워 큰 딸인 영옥씨를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씨에게 출가시켰고 설자씨는 국내 굴지의 기업인 동양물산 김희용 회장에게 출가를 시켜으며 유일한 아들인 준홍씨는 중앙부처 차관보와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여 국가와 사회에 공헌케 하였다. 20세기 구미가 낳은 일물 박상희 선생의 이상과 실천은 오늘날 뜻있는 구미 시민들로부터 "민주주의와 지역사랑 한길, 독립운동가 박상희 선생"이라는 현대적 개념으로 재조명 되고있다.
후손들과 선생을 추모하는 구미 시민들의 뜻을 모아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