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page


246page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모진고문 이윤재선생과 한징선생이 옥사한 것은 모진 고문탓만은 아니었다. 썩은 콩깻묵 한 조각과 소금에 절인 해초 한 점으로 된 옥중 식사는 그대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결 감방에 2년이상 구금해 놓고 온갖 악행을 다한 끝에 드디어 1945년 1월 16일 선고가 있었다. 이극로 징역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6월, 정인승 정태진 징역2년, 그리고 이중화 이우식 이인 김법린 김양수 김도연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이 주어졌으나 이미 2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였다. 형사들은 조서를 받다가 조금만 엇갈리면 무조건 달려들어 마구 때리는데 한번 맞고 나면 한 보름씩 말을 못했다. 애산은 이때 앞니 두개가 빠지고 어금니는 온통 욱신거리고 흔들렸다. 몽둥이건 죽도건 손에 잡히는 대로 후려갈기니 양쪽 귀가 찢어졌다. 엄지손가락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엄지와 검지 사이가 쭉 찢어져 이후 애산은 귀가 쪽박귀가 되고 손가락은 완전히 펴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아사가제'라는 것과 '비행기 태우기'였다. 사지를 묶은 사이로 목총을 가로질러 꿔넣은 다음 목총 양끝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비틀거나 저며들게 하는것이 비행기 태우기이고, 두 다리를 뻗은 채 앉혀놓고 목총을 두 다리 사이에 넣어 비틀어대는 것이 '아사가제'라는 것인데, 더욱 괴로운 것이 아사가제로 애산은 이로인해 평행 보행이 부자연스러울 만큼 다리가 상했던 것이다. - 애산 이인선생 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