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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당시 나이 83세(1929년~2011년)
약력
1929년 12월 30일(음력 11.9) 경북 달성에서 1남 2녀의 막내로 출생
1947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자영업자 전상수와 결혼
1948년 9월 28일 전태일 출산하고 이후 태삼, 순옥, 순덕 출산
1954년 서울로 이사 와서 팥죽, 비빔밥, 찹쌀떡 장사 등을 해서 재봉틀 마련
1970년 11월 13일 아들 전태일이 분신 항거한 이후 노동자 어머니의 길로 나섬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 노동조합 결성
1977년 7월, 1980년 10월, 1981년 2월 민주화 및 노동운동 관련 구속되어 옥고 치름
1985년 민기협 공동의장 및1986년 유가협 초대회장
1998년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 명예회복법 제정을 위해 422일간 국회 앞 천막농성
2011년 9월 3일 오전 11시 45분경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 1929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동지는 일제강점기 대구 방직공장 강제노역 중 공장을 탈출하기도 하였다. 1947년 결혼 전태일을 낳았다. 1970년 아들 전태일의 분신 항거 후 노동자의 어머니의 길로 나섰다. 유신 독재정권에 맞서 근로시간 단축농성, 노동교실 사수, 민주노조 탄압에 맞서 투쟁하던 중 1977년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계엄령으로 수배를 받고 청계피복노조 복구 투쟁 과정에서 다시 구속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1986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건설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이석규 장례투쟁 장례위원장을 맡아 수배를 받았다. 1988년 의문사 진상규명농성을 유가족들과 전개하였으며, 전노협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운명하는 순간까지 투쟁하는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자 농성과 집회 현장을 찾았다. 동지의 삶은 노동자에게는 물론 모든 깨어 있는 민중을 살아 있는 전태일이 되게 함으로써 인간해방의 초석을 놓았다. 한 아들을 잃고 수천 수만의 아들딸을 얻었으며, 노동자의 어머니, 민중의 어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