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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몽상 의병장은 1907년부터 지리산일대에서 박매지, 임봉구, 조기섭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러던 중 1908년 10월 6일 청암면(현 황천면) 안양리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기습공격을 받고 30세의 나이에 교전 중 전사했다.
공훈록 : 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전기의병 당시 활동했던 의병장을 비롯하여 평민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손몽상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1908년경 이성로(李成魯)의진에 참여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수십 명의 군사들과 함께 경남 하동군(河東郡) 청암면(靑巖面)을 근거로 인근 면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그러나 동년 10월 청암면 안양리(安養里)에 주둔 중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교전 끝에 체포되었다. 그는 연행 도중 탈출을 기도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