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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제점 ○ 안내판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없으나, 안내판 곳곳에 녹이 슬어 있고 얼룩이 묻어 있는 등 관리 상태가 좋지 못함. ○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점자 안내나 음성변환용코드가 부재함. ○ 이곳에는 ‘벵듸가름(잃어버린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음. 안내판의 전체적인 내용 구성이 부실하고, 유적을 ‘잃어버린 마을’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듦. 4·3과 관련하여 ‘잃어버린 마을’은 “4 3사건 때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마을 가운데 일부로서, 주민들이 돌아와 마을을 이전처럼 복원하지 못해 버려지거나 단순 농경지로 바뀌면서 더 이상 마을로 존재하지 않고 사라진 경우를 말함”. 3 ‘벵듸가름’ 안내판 인근은 인가와 학교, 리사무소가 있는 등 마을이 복원된 상태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마을'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아 보임. 또 안내판에 기재된 내용만으로는 ‘벵듸가름’에서 4·3 당시 어떤 일어 났는지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움. 3) 개선방안 ○ 안내판에 대한 정기적인 관리점검이 필요함. 내용이나 보존 상태 등에 있어서 문제가 있을 때 연락할 수 있도록 유적지 관리 주체 및 연락처, 설립 날짜 등을 명시해야 함. ○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음성변환용코드나 점자 안내판이 설치되어야 함. ○ 『 제주4·3 유적 1 제주시 개정증보판 』 에 해당 지역이 ‘월대 옛터’라는 이름의 역사현장으로 분류되어 있음. 『 4·3은 말한다 2 』 에는 이곳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피해자의 직접 증언 및 설명 4 이 있음. 이 내용을 바탕으로 안내판 내용을 개선해야 함. 2 벵듸(뱅듸, 벵디,뱅디)는 '평평한 들판', 가름(카름)은 '마을 안의 구분된 거리'라는 의미.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 제주방언사전(https://www.jeju.go.kr/culture/dialect/dictionary) 」 3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 , 2003년, 518쪽 4 해당 내용을 간술하면, 금악리 월대터는 현재 금악리사무소(당시 향사) 앞 오거리로 마을의 중심지였음. 주민들의 모임터와 어린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음. 이곳에 1919년 3·1운동을 기념해 네 그루의 나무를 심음 . 4·3 당시인 1948년 5월 토벌대는 당시 금악국민학생 3학년에 재학 중인 어린이의 붙잡아 마을사람들의 행방을 추궁하며 밧줄을 목에 묶어 나무에 매다는 만행을 저지름. 이 학생은 다행히 기지를 발휘해 도망쳐 목숨을 건 짐. 239 6 외국어(영어) 안내가 있는가? O 7 안내판 설명에 비문이 있는가? (번역 오류 등) X 8 안내판 설명에 잘못된 정보가 있는가? △ 9 인권 ・ 평화 ・ 젠더 감수성이 잘 반영되어 있는가? O 10 역사적 사실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고 있는가? X 기타 『 4·3은 말한다 』 와 『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 제주4·3 유적 1 제주시 개정증보판 』 4·3 관련 주요자료에서는 ‘벵듸가름’이라는 지명의 ‘잃어버린 마을’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이 '벵듸가름'이 아니었다고 확신할 수 없음. 왜냐하면 '벵듸가름'이라는 지명 자체가 제주어에서는 일반 명사로 사용되는 '벵듸'와 '가름'의 합성어이기 때문임. 2 일례로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는 '벵(뱅)듸가름'이라는 마을이 있었음. 다만, 『 제주4·3 유적 1 제주시 개정증보판 』 에는 이 지역이 ‘월대 옛터’라는 지명의 역사현장으로 분류되어 있음. 이에 우선 이를 바탕으로 유적지 개요 등을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