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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당시 22세
약력
1948년 8월 26일 경북 대구시 남선동 출생
1963년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 입학 후 가정 사정으로 그만둠
1965년 평화시장 내 삼일사에 견습공 취직, 하미사 재단보조, 재단사 일함
1969년 6월 평화시장 내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 조직
1970년 9월 바보회를 '삼동친목회'로 새롭게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됨
1970년 10월 8일 삼동회 대표들이 (주)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다락방 철폐, 노조결성지원 등 8개항의 요구를 제출함
1970년 10월 24일 근로조건 개선 시위를 기도했으나 실패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경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분신 후 운명
동지의 삶과 운명 - 동지는 '4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봉제 일을 하는 아버지의 수입으로 생활했던 동지의 가족에게 가난은 언제나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있었으나 어려운 집안 살림을 위해 다니던 공민학교를 그만두고 껌, 신문팔이, 구두닦이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동지는 가난한 가게를 도왔다.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니다가 1년이 못 되어 그만두고 동지는 16살 때부터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시다로 노동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동지는 착취와 혹사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되었고 나아가 이를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버스비를 아껴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주는 등 온정을 베풀었던 동지는 평화시장 근로조건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상사 월급도 포기하고 재단 보조를 거쳐 재단사가 되었다. '69년 6월부터 재단사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바보회' 모임을 조직하고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뒤지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 근로기준법1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 제출 등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바보회'를 '삼동친목회'로 바꾸고 청원과 징정 대신 더 적극적인 투쟁방법을 계획했다. 직접 청계천 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이를 토대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개선 진정서'를 만들어 삼동회원 노동자 9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다시 노동청에 제출하였다. 실질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동지는 삼동친목회를 소집하여 '70년 10월 20일과 24일 시위를 계획하지만 실패한다. 마침내 동지는 11월 13일 청계천 노동자들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의 의미를 담아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당겼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산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