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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봉분의 지상부분 생토층과 맞닿는 곳에는 경사진 지면과 나란하게 사방에 방형으 로 병풍석을 배치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병풍석은 모두 화강암계 석재를 가공한 것 으로 두께 20cm 정도의 장대석을 생토층 위에 먼저 깔아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높 이 l10cm 크기의 면석과 두께 50cm의 갑석을 각각 올려놓아 조립하고 있다 그리고 갑석 내부는 전기한 판축층이 독선상을 이루며 소복하게 쌓이고 그 위에 부식토를 앓 게 한별 깔아 잔디를 심어 마감한 상태이다. 다만 다른 방형분의 경우 병풍석은 생토 층을 수평하게 고른 뒤 지대석을 설치하고 그 위에 변석과 갑석도 수평하게 올려놓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여기서는 경사면을 따라 비스듬히 지대석을 설치하고 변석과 갑석 도 경사지게 올려놓은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상부의 우수와 같은 지 표수의 석실내부 침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되면 뒷 쪽의 曲뽑도 역시 그렇게 높지 않게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曲웹 양끝이 봉분 좌우까지 ‘ E ’ 字 형태로 꺾어진 형태의 것인지는 훼손이 심해서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현존하는 曲f옮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지변에 수직하게 3단-4단 정도 직선상으 로 亂積한 형태이다. 도굴은 이렇게 단단하게 축조된 판축층을 수직으로 굴착하여 석 실 개석부분에까지 이른 다음 북동쪽 단벽을 파괴하여 석실 내부로 침입한 것이다 그 리고 도굴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주위 소나무 가지를 벌목해서 구덩이 속을 채우고 그 위에 비닐로 된 비료부대를 덮고 흙을 채운뒤 다시 잔디를 심어 위장시켰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세월이 경과하면서 구덩이 속에 채워졌던 소나무가지들이 부식되고 그 위에 쌓였던 흙이 태풍으로 비바람에 휩쓸려 도굴갱 내부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남동쪽에 있는 도굴부분도 마찬가지의 훼손 과정을 겪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봉분의 크기는 길이 605cm, 폭 482cm, 지상에서 높이 210cm 정도이며 석실 바닦에서는 410cm 정도이다. 뒷쪽 독장은 병풍석에서 바깥으로 200cm 정도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납작한 할석을 한벌 깔아 두었고 병풍석 외측 사방에도 동일 수법과 규모 로 된 數石層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와같이 콕장과 병풍석 사이에 부 석층을 설치하는 것은 麗末빡初에 축조된 방형분에서 흔히 볼 수 있다.4) 목조건물의 회랑처럼 봉분 주위를 돌아가면서 참배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으로 풀이된다 4) 국립공주박물관, r天安 南山里 高麗훌J , 1995 심봉근, 「南海平山里 方形養J r石堂論蕭」 第=十五輯, 東亞大學敎 石堂傳統文化冊究院, 1997 m 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