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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러 세계만방에 억울을 표명할것을 약정하고 귀향하여 동지규합에 나섰던것이다. 그리하여 동면 산성리의 이용기 산외면 봉계리의 구열조외 속리면 구인리의 이창선 이준영 이인하 김용석 수한면 민서리의 최용문 송덕빈 안만순 제씨와 더불어 치밀한 계획을 세운끝에 1919년 3월 1일 야반을 기해 리민을 인솔하고 난성리의 노고성 봉곡리의 갓모봉 속리산의 문장에 올라가 봉화를 신호로 하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일경에게 즉각 체포되여 재판을 받은 결과 의사께서는 청주및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어 모진 고문으로 거의 반신불수가 되다시피되어 1921년 4월에 가출옥되었으나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신음하시다가 서거하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이라 하겠는가 생각컨데 우리는 원래가 자유와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으로서 더욱 애국심이 투철하여 역사상 외침을 당할때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그리하여 그 불굴의 투혼은 능히 이 강토를 수호해온 이외에 동방에 있어서의 예의지국이라는 칭호까지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의 이 거룩한 항일투쟁이야말로 우리 겨레 고유의 혼을 잘나타내었다고 볼수있지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혼은 지난날 8.15의 빛나는 해방을 가져온 것이 며 또 나아가서는 현재와 미래를 통해 민족사상의 등불이 되기에 족하다 할 수 있다 그리하여 1977년 12월 13일자 정부로부터 표창장이 하달되었으니 이것 너무도 당연지사라 아니할 수 없다. 본 애향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