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page

1970~1979년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의 시대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새마을운 동은 국 민부흥운동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며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스포츠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호도하기 위해 축구, 레슬링, 권 투 등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특 징은 포 크송, 건전가요, 운동권가요의 전성기였다. 양희은, 김민기, 이정은 등이 이 시 대의 가요를 주도하였다. TV의 보급률도 급속도로 증가하여 1971년에 62만대에 불과하던 TV가 1975 년에는 200만대, 1980년에는 660만대로 늘어나 대중문화의 핵심 통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군사정권이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TV의 보급 을 적 극 장려했기 때문이다. 일일연속극은 1970년을 기점으로 꽃을 피웠다. 1970년 3월 시작한 TB C <아 씨>를 비롯해 3개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일일연속극 편수가 1 3 편에 이 를 정도 였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맞물려 사회정화 드라마로 제작된 <수사반 장>은 1971년부터 20여 년간 방영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오락과 향락 문화 가 급속 도로 퍼지던 1970년 대 후반에는 <후회합니다> <안녕> <아 빠> 등 불륜 드라마 가 쏟아 졌다. 1980~1989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랜 독제정치를 펼치다가 마침내 김 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당시 계엄 사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군부가 12.12쿠데타를 일 으키고 권력을 장악한 뒤 전두환 정권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 층의 민주화바람이 불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민당 등 야당과 재야의 상징이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경쟁구도는 계속 되었다. 이 무렵 컬러TV의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에 드라마들은 훨씬 더 많 이 성 숙되고 컬러시대에 맞춘 대형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불법 집권세력은 여론을 순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TV의 메커니즘을 이용하 려 했 다. 이 무렵에 조선시대의 쿠데타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개국>과 <조 선왕조 500년> 등이 제작된 것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