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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보조댐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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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오천년에 가장 우리다운 것은 선비의 삶이다. 선비는 누구나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글과 도덕을 존중하고 의리와 범절을 세워 살아가는 모든이를 말한다. 하계촌에도 그런 사람들이 살았다. 하계촌의 인적은 450년전에 퇴계의 양진암에서 비롯되나 마을은 4백전전에 선생의 손자 동암 이영도께서 개척하였다. 진성이씨 집성촌으로 1975년 안동호가 범랍할때까지 370년간 선비의 기상을 드높여 왔다. 이곳 선비들이 표방한 퇴계사상의 요체는 '인'과 '경'에 있는데, 표현방법은 때에따라 달랐다. 임진왜란때 기의했던 동암은 병자호란을 당하자 79 고령에 비분 감질로 세상을 마쳤고 선생 12세손 향산 이만도와 13세손 동은 이중언은 경술국치때 자정으로 순국하였다. 치택 인생을 견위수명으로 마감한 것이다. 이런 전통은 다시 독립운동으로 꽃피어 청사를 새롭게 빛냈다. 고사를 알려거던 여기서 백보 올라가 선생묘소에 새겨져 있는 자명을 보든지 백보 내려가 수몰된 하계마을에서 고인의 예던 길을 살펴보라.
하계마을은 지리조차 남다르다. 뒤에서 내로오는 상계와 하계수 좌우에는 한지산과 영지산이 우뚝하고 밖으로는 청량산과 용두산이 하늘을 찌른다. 왼쪽 건지산은 낙수에 이르러 월란대를 바라보고 청룡을 들었는가 하면 오른쪽 영지산은 백호답게 도산서원 형국을 만들고 앉았다. 앞으로는 청아한 강물이 도산구국을 연출했는데 제6곡의 진경이 머문곳 여기가 하계촌이다. 과연 산은 높은 덕을 품었고 물은 영원한 생명을 노래하는 도다. 의성현 의동면 또는 예안군 도산면 토계동 하계촌이라 했다. 수몰당시 일백호에 불과했으나 세진 세사 세태 태순 언순 심예 만덕 만규 만송 만운 만수 만규 중두 중언등 홍패 15장에 이르고 견순 만순 중철 익호 필호등 문명을 떨지 언사와 백패까지 손꼽으면 사람을 일컫는다. 문집만 32인 일백종을 헤아린다. 동암 후손의 원촌 단사 섬촌 부포마을까지 보면 홍패 24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