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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를 사수하라! : 최규식 서장은 무전 보고를 받자마자 기동 타격대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무장공비들을 가로막았다. 최규식 서장과 정종수 경사가 무장공비와 팽팽하게 대치하는 중, 1813번 버스가 자하문 고갯길로 올라왔다. 무장공비들이 이를 국군 지원 병력이 오는 것으로 오인하여 버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며 산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무장공비가 쏜 총에 맞은 최규식 서장은 "청와대를 사수하라!"라고 마지막 명령을 남긴 채 그 자리에서 순직하였다. 공비대열을 막고 있던 정종수 경사도 총상을 입고 치료받던 중에 숨을 거뒀다. ∎ 그날 밤의 치열한 사투가 남긴 것 : 산으로 도망간 무장공비 31명을 소탕하는 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여 31명의 무장공비 중 30명이 사살되거나 생포되었다. 우리도 1.21 사태로 민간인 7명이 사망하고 군 장병 75명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다. 1.21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주민등록제도를 도입하였고 고등학교 정식 과목으로 교련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향토예비군과 육관3사관학교를 창설하였으며, 전시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을지연습을 실시하는 등 국가 안보 체계를 굳건히 다졌다. ∎ 경찰 영웅은 우리의 가슴속에 : 최규식 서장과 정종수 경사가 무장공비들의 습격을 막아낸 장소는 청와대로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약 300m 떨어진 곳이었다. 이들이 무장공비를 막지 못했다면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촉측발의 상황이었다. 최규식, 정종수 두 경찰관의 사명감과 헌신의 초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는 것이다. 국가 수호의 상징과도 같은 경찰영웅들이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