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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文(유사문) 우리마을은 산외면 북쪽 소백산맥 무봉산에 위치하여 동쪽은 오대리 서쪽은 중리 이식리 남쪽은 산대리1구(재동, 모정) 길탕리 북쪽은 어은리에 점하고있다. 산속에 터가 있어 산대(山垈)라 한것을 서기 1914년 일제가 신개울 산대 재동 모정을 병합하여 산대리(山大里)라고 하였으며 그후 행정구역으로 재동 모정을 산대1구로 신개울(新浦洞,신포동) 산대(山垈)를 산대 2구로 했다. 서기 1674년 문화류대승공(시조 류차달) 20세, 증호조참판 류기문의 아들 가선대부 행(行)동지중추부사 온(蘊)이 이마을에 정주(定住) 한후, 인척인 여산송씨 풍양조씨가 이주 삼성(三姓)의 세거지였으나 지금은 경주김씨, 죽산박씨, 안동김씨, 평창이씨들과 같이 살고 있다. 우리마을은 충효와 면학을 으뜸으로 실천하여 많은이의 칭찬을 받았던 효자 류진호 류상길 류상좌 류상태, 류병욱, 류병호, 류봉운과 효부 죽산박씨가 충청북도에 수록되고 대대로 효자 효부가 있어 삼효촌(三孝村)이라고 했으며 한말 문장가 담석 류병호 문하에는 많은 제자가 있어 성리학을 전수하였고 류호준은 한의학을 류호영 류근식은 한학을 전수하였다. 우리마을에 거주한 문화류씨는 일제가 강제로 단행한 창씨개명을 반대하고 응하지 않은 사실이 있고 6.25사변에 참전한 류남거 류광렬은 전사하여 국가유공자로 추서되었다. 보은군이 보호수로 지정한 굴참나무는 우리마을의 상징이며 보은군의 자랑 나무다. 선현들이 지켜온 마을의 향훈은 첫째 선조에게 보은하라. 둘째 후손에게 본(本)이 되라. 셋째 인류에게 천(泉)이 되라고 한것은 우리마을을 향리로 한 모든이가 지켜야 할 교훈이니 우리 모두가 협심단합하여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다짐하고 후세게 길이 빛나기를 기원하면서 보은군의 지원과과 동인 모두의 뜻을 모아 이 비(碑)를 세우다 단기 4323년(서기 2000년) 4월 20일 보은군수 김종철 지정 지원 문화류 후안 흥렬 근찬서 산대리 2구 동이일동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