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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당시 나이 77세(1918년~1994년) 약력 1918년 6월 1일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출생 1976년 3월 1일 '3.1민주구국선언' 성명서를 초안하여 명동성당에서 발표 1988년 7월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민주단체 협의회' 공동대표 1989년 3월 25일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방북, 북한 조평동과 공동성명 발표 1991년 1월 '범민련남측본부 결성 준비위원회' 위원장, 노벨평화상 후보추천 1994년 1월 18일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 동지는 한마디로 암울했던 과거 군사독재정권시절을 거치며 줄곧 재야 민주화운동을 주도해 온 정신적 지주였다. '74년 10월 반유신 재야단체인 '민주화북국민회의' 참가를 시작으로 '76년 3월 1일 '3.1민주국구선언사건'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돼 20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첫 번째 옥고를 치르게 된 이후 삶의 절반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냈다. 동지는 '89년 3월 통일문제를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직접 논의하기 위해 방북하였다. 이는 '분단 50년 이내에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분단이 고착된다"며 통일운동에 남다른 신념을 직접 실천하여 온 민족에게 통일의지를 호소한 의거였다. "통일은 됐어"라고 힘주어 외치던 동지는 유신의 압제에 분연히 맞서고 이후 치열한 반독재 투쟁과 통일운동으로 일관해 온 민족의 큰 별이었다. 박용길 당시 나이 93세(1919년~2011년) 약력 1919년 10월 24일 황해도 수안면 수인광산에서 출생 1944년 6월 17일 문익환 목사와 결혼 1955년~1988년 기장 여신도회 임원으로 인권, 민주, 평화, 통일운동 주도 1995년 6월 김일성 주석 1주기 - 문익환 목사 장례 답례를 위한 평양 방문 2000년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초청인사로 평양 방문 2005년 남북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2011년 9월 25일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 한 평생을 겨레의 평화로운 삶과 통일을 위해 노력한 동지는 '85년 '민주화 실천가족운동협의회'를 결성하였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전문민족민주운동연합 등 소위 재야민주통일운동이 총 망라된 단체의 결성을 주도한 문익환 목사와 함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을 펼쳐나갔다. 1995년 한반도 핵위기, 전쟁위기로 민족 앞에 크나큰 위험이 놓였을 때, 김일성 주석 사망 1주기를 계기로 북쪽 동포를 위로하고 남과 북에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방북행을 택하였고 김주석 추도식에 참석한 후 판문점을 통해 귀환해, 옥고를 치루기도 하셨다. 이후 동지는 통일맞이, 민화협, 통일연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활동하며 남북민간교류를 활성화며 한 평생을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헌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