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page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서울대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 삼성재벌 밀수 규탄, 6∙7부정선거 규 탄, 삼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공명선거쟁취 등의 학생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내 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후 6년 가까이 피신생활을 하던 중 민주화운동에 주력하 였다. 특히 3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전태일 평전‘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 하는가 하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망원동 수재사건, 대우어패럴사건, 이경숙 사 건(여성 조기정년제 철폐)등을 변론하였고, 변호사협의회 인권보고서를 집필하 기도 하였다. 또한 보도지침사건, 박길재 사건(상봉동 진폐증 보상문제)을 담당 하였으며, 기타 노동, 빈민, 공해, 학생운동 관련사건 등 인권변호에 전력하던 동 지는‘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만들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한 채 운명하였다. ’65년 서울대 전체수석으로 법학과에 입학하고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6개월 만에 끝내버린‘시험도사’로서의 지적인 재능, 경기고 시절 박정희 정권의 굴욕 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해‘공부선수’들로 이뤄진 경기고 학생들을 거리로 이끌어 낸 탁월한 대중선동력, ’78, ’80년대 인권변호사로서 최고의 승소율을 가능케 한 논리정연한 변론, 판검사와 방청객을 침묵케한 유려한 변론문 등 동지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하지만 동지의 놀라운 재능은 정작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이다. 인간을 사랑할 줄 알고 그 사랑을 관철하기 위해 결연한 투혼을 불태울 수 있는 재능, 이것이야말로 실로 범인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 위대한 재능이다. 동지가 집필한 전태일 평전은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이후 전태일 동지 의 죽음을 노동운동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면서 한국노동운동사의 새 지평을 열게 했지만 정작 글쓴이가 알려진 것은 90년 말의 일이다. 동지는 생전에 이 사 실이 알려지기를 끝내 거부라도 하듯 개정판 발간을 열흘 남짓 앞두고 세상을 떠 났다. 조영래(당시43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47년 3월 26일 대구 출생 1965년 3월 서울대 법대 입학 1969년 3월 서울대 대학원 입학 1971년 10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1983년 변호사 개업, 전태일 평전 집필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변론 1990년 9월 폐암 3기로 입원 1990년 12월 1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운명 끝내살리라 |463| |46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