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page


232page

비록 육신은 스스로 불살랐건만 그 일과 뜻은 저 강산과 더불어 천추에 푸르는 지사 시인이 있으니 그분이 육사 이원록(일명 활)선생이다. 선생은 1894년 4월 4일 이곳 원촌리에서 퇴계선생의 14대손으로 출생하여 소년시절 조부 가헌공에게 한학을 배우고 예안의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입문하였으며 1923년부터 1년 남짓 일본 동경에 유학하였다. 1925년 백형 원기 숙제 원일과 함께 정의부 군정서및 의열단에 입단하여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백형 숙제와 함께 2년 7개월의 옥고를 치른것을 비롯하여 선생은 전후 10수회의 검속과 고문을 받았으며 1933년 중국에서 조선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북경대학 사회학과에서도 수학하였다. 1933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나온 선생은 그 뒤 10년간 시와 평론과 수필을 발표하고 국내 언론기관에 몸담기도 하였으나 1943년 가을 서울에서 피검되어 이듬해 1월 16일 새벽 북경에서 옥사하였으니 유회는 이곳 향리에 잠들어 있다. 조국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40평생을 투쟁과 영어와 고난으로 일관하였으면서도 주옥과 같은 시편을 남겨 한국시사에 길이 빛날 선생을 기려 그분의 출생지인 이곳에 이 시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