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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하(朴勝夏, 朴勝福 ) 는 충북 진천(鎭川) 사람이다. 그는 청주농업학교(淸州農業學校)에 재학 중 충북 청주군 청주면(淸州面)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힘을 쏟던 중 1919년 3월 9일 사전 발각되어 붙잡혔다. 청주에서의 만세운동은 일찍부터 모색되고 있었다.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다음 날인 3월 2일에 독립선언서 286매가 전달되었다가 일경에 발각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3월 7일에는 읍내 우시장(牛市場)에서 장꾼들에 의한 만세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에 참례차 상경했던 신영호(申榮浩)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9일 청주농업학교 학생 오석영(吳錫永)에게 전달하면서 청주농업학교에서의 만세운동은 구체화되고,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박승하는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서 만세운동의 계획에 참가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3월 9일 청수동(淸水洞) 김현구(金顯九)의 방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경고문 3백 매를 인쇄하면서 만세시위를 준비해 갔는데, 도중에 발각되어 박승하는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5일 대구복심법원과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