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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 ..... 전략 ..... 이로부터 금대암에 선원이 개설되어 수선납자가 운집하고, 벽송사 본당에는 강원이 개설되어 근세 일제강점기까지 지속되였으니, 근 300년동안 조선불교 제일의 총림이 이루어져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이로부터 선교를 겸한 대종장들이 벽송사에 수선안거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게 되니, 강당을 겇 간 강주(講主) 스님만도 약 100인이나 되니 학인과 납자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근대의 선지식이신 경허선사도 벽송사에 주석하며 서룡선사 행적기를 집필하였다. 특히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동조(初月東照) 대사는 일제강점기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인해 400여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최고의 조정인 벽송사의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암약(당시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됨)으로 말미암아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 소실되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60년대 이후 구한원응(久閑元應)대사의 원력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옛날 선정의 최고 조정에 벽송선원을 낙성하여 을유년(2005년) 하안거에 개원하여 눈푸른 납자들이 수선정진할 수 있는 선찰종가(禪刹宗家)로 거듭나게 되었다. .....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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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동조(初月東照) 대사의 항일행적이 설명되어있지만 공훈록에서는 찾을수가 없다. 白寅營(백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