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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74년 4월‘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사건으로 군사법정에서 이철, 유인태, 김지 하 등과 함께 21세의 가장 어린나이로 구속되어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동지는 최 후진술 첫마디에서 사형이 구형된 것에 대해“영광입니다”라고 외침으로써 많은 감동을 주었다. ’87년 12월 구로구청사건으로 구속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 건강에 이상을 느껴 교도소와의 싸움 끝에 외래진료를 받았으나 진행성 위암3기 로 판명되어 ’88, ’89년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90년 12월 6일 오랜 투병생 활 끝에 그토록 바라던 민주세상을 보지 못한 채 운명하였다. 동지의 삶과 투쟁은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보기엔 미운 짓만 골라서 한 셈이고, 이로 인해 매 사건마다 단순한 사안인 경우에도 장기복역 등의 보복을 집중적으 로 받았다. 특히 구로구청 사건 때에는 ’85년 7월에 구속되어 출옥한지 5개월도 안되는 시점이었고, 본인이 내색은 안했지만 결국은 이것이 육체적, 정신적인 과 부하가 되어 불치의 병의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지가 우리에게 더욱 감동을 준 것은 의연한 투병과정에서였다. 현대의학으로서는 치유 불능이라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투병을 이 사회의 구 조악, 죽음의 세력과의 싸움으로, 그리고 이 시대 민중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것 으로 생각하면서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고 문병 간 사람들이 오히려 위로받고 오는 일이 많았다. 이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연히 최선을 다한 동지야말로 진정‘불가항력’ 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이며, 이것이 오늘 살아있는 우리를 부끄럽 게 한다. 김병곤(당시37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53년 경남 김해 출생 1971년 2월 부산고등학교 졸업 1971년 3월 서울대학교 상대 입학 1973년 유신반대 시위로 첫 구속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가입 1985년 민민투 사건으로 구속 1987년 구로구청 사건으로 구속(투쟁지도부 상황실장) 1990년 12월 6월 위궤양 및 위암3기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운명 끝내살리라 |461| |46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