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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3 · 1운동 발상지, 만세운동 진원지로 큰 역할 평안도, 3 · 1운동 가장 먼저 일으키고 맹렬한 투쟁 전개 안성 3 · 1운동, 행정 · 경찰주재소 무력화로 이틀간 ‘해방’ 함안 3 · 1운동, 20명 사망 · 97명 실형 삼남에서 최대 피해 3 · 1운동은 1918년 11월 상하이의 여운형이 당시 중국을 방문한 미국 윌슨 대통령의 비공식 특 사 찰스 크레인을 만나면서부터 태동했다. 1919년 2월 28일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조직망을 통 해 독립선언서가 전국에 인편으로 전달되었다. 이후 이 선언서가 전달된 곳에서는 대부분 만세운 동이 일어났다.  평안도지역은 민족대표의 3분의 1인 11명을 배출하여 가장 많은 민족대표를 배출한 곳이었고, 이 들 민족대표를 중심으로 가장 먼저 3 · 1운동을 일으킨 지역이었다. 또 이곳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 해 일제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 역시 대단히 컸다. 1919년 4월 1일 밤부 터 이튿날 새벽 사이에 있었던 원곡 · 양성 만세시위는 두 지역을 오가며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 등 일제 관서를 공격하는 등 공격적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왔다. 함 안 3 · 1운동의 내용과 방식을 보면 만장(輓章)과 태극기를 앞세운 만세를 고창하는 시위를 기본으 로, 전화선 절단, 주재소, 면사무소, 등기소, 우체국, 공립보통학교 등을 몽둥이 · 괭이등이나 투석  등으로 공격했다. 군수나 면장을 위협하여 만세를 강요하기도 하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만세운동 을 펼치기도 했다.     Theme 1. 3·1운동의 태동과 서울 3·1운동의 전개・박찬승 Theme 2. 평안도, 3 · 1운동을 이끌다・이용철 Theme 3. 안성지역 3 · 1운동과 특징・허영란 Theme 4. 함안 3 · 1운동의 전개양상과 특징・박철규  3 · 1운동 105주년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양상과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