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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유씨 일문9의사 사적비문 우리 민족은 외적의 침략을 받을때마다 백의출전의 의거로써 보국충절을 다하였다. 임진왜란시 의병들의 활약과 한말 왜적의 침략에 항쟁한 의병의 활동은 생명보다 절의를 중히 여기는 우리 민족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말 호남지방에서 거의한 최익현 임병찬 이석용 전해산 이규홍 등은 위국충절로 청사에 빛난 분들이거니와 여기 또한 이 고장에서 낳은 유문 9의사야 말로 그 충절이 극에 달하였다. 9의사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출생한 유중화(자 치복) 유현석 유영석 유준석 유태석 유명석 유연청 유연풍 유연봉 등 9인이다. 이들은 려말 문하시중을 지낸 유탁을 선계로 하고 조선조 임란에 호성공신인 유광의 후예로서 이 지방에 세거한 명문이다. 이들이 거의에 뜻을 두기는 고종 3년 2년 을미에 동종 유인석이 반포한 격문에 감동되고 광무 9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에 있은 최익현 임병찬의 의병 출동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이때 유중화는 각처에서 봉기하는 의병들과 같이 구국의 일선에서 신명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인경에 거주하는 동지 유지명 송태식 등과 모의하여 앞의 친족 8인과 생질 이유종 이태종 등 수 명과 더불어 순종 원년 정미 가을에 의병을 조직하니 이 운동에 호응한 호민도 백여명에 달하였다. 한때는 이규홍 의병단과 합세를 하기도 하고 혹은 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