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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찬지사추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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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보, 경성사범 학교를 졸업하신 후, 부산 수영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뜻한바 있어 고향으로 돌아와 1946년 8월 13일 향리 유지들의 뜻을 모아 향토 교육의 요람이 될 하청중학교와 하청고등학교(현 경남산업고등학교)를 설립하셨다. 농촌학교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학교를 가꾸시다가 1960년 2월 보다 나은 학교의 발전을 위해 아무런 조건없이 국가에 헌납하여 공립으로 전환시키고, 이후 선생께서는 정년에 이르기까지 학교장으로 재직하며 오로지 지역 인재를 기른다는 일념으로 한 평생을 육영에 바치셨다. 1978년 12월 4일 향년 66세로 장서(長逝)하시니 모두가 슬퍼하며 면민장(西民葬)으로 모시었다. 선생의 슬하에는 7남 2녀가 있으시다. 선생의 일관된 교육보국의 높은 뜻은 두 번에 걸친 홍조소성훈장(1962.8.15, 1963.12.7)과, 제1회 경향 교육상(1965.6.14)으로 더욱 높이 드리워졌다. 교육자로서뿐만 아니라 시조시인(時調詩人)이셨던 선생께서는 1957년 시조 「청산곡」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오셨고, 1965년 시조시집 「風蘭(풍란)」을 발간하셨다. 자연관조의 시안(詩眼)과 더불어 평생을 벗해온 서예는 예(隷). 초(草)에 능하였으며, 특히 한글의 초서화는 독창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며 서예가로 1963년 제2회 경상남도 문화상을 받으시면서 그 빛을 더하게 되었다. 일찍이 대영제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부심처럼 이거제도와 바꿀 수 없는 가장 훌륭한 자랑은 바로 김기호 선생이시다. 금년은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서른 두해가 되는 해이다. 오직 하나를 중심하고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는 주일 무적(主一無敵)의 성과 열이 어느때보다 아쉬운 이 때, 생전의 지인(知人), 문우(文友), 후학(後學)들이 성력을 모아 한 조각 돌에 선생의 높은 뜻. 새겨 두고자 한다. 2009년 12월 일 하청면면지편찬위원회 위원장 활석(活石) 김백훈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