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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취하여 공화국을 건립 한다는 원대한 꿈을 세우고 있었다. 구시대의 봉건사상을 극복하고 근대국가 수립을 표방한 것이다. 그리하여 영주의 대동상점,대구의 상덕태상회 서울의 남일여관과 광주 예산 인천 해주 용천등지의 곡물상 또는 잡화상점을 거점으로 전국에 일백처럼 혁명기지를 건설해 갔다. 아울러 비밀,폭동,암살,혁명을 행동지침과 목표로 삼아 자금과 동지를 모집하고 무기를 비자하며 전 민족이 봉기할 혁명전쟁을 준비하였다. 한편 이용진,김좌진,손일민,이관구 등으로 하여금 만주에도 거점을 확보하고 때마침 진행중이던 신흥학교의 독립군기지사업과도 긴밀히 연락하고 있었다. 1917년에는 혁명의 전초작업으로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작업에 착수하여 임세규는 칠곡에서 김한종은 아산에서 이병호는 보성에서 한훈은 별교에서 성과를 올려 대한광복회의 이름이 섬광처럼 빛났다. 그리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할 혁명전야의 흥분이 온겨레를 긴장시켰다. 그때 의사들은 친일배를 처단 한자리에 광복회의 격고문을 남겨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그러한 우직함이 탈이었던가 1918년에 들어서자 전국의 조직망이 발각되어 많은 의사들이 일제의 형장에서 처참하게 그러나 장엄하게 순국하였다. 어찌 헛될 수 있으랴 광복회는 운명을 다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