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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때 일제군경의 야만적인 살상으로 고귀한 생명을 희생당한 순국선열 23위릐 영혼이 고이 잠든 합동묘이다. 일제는 우리 주권을 탈취하고 헌병경찰을 동원하여 무단통치를 감행하였지만 우리의 광복투쟁은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되어 3.1운동으로 일원회되었다. 이때 제암리에서도 교회마당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며 밤에는 지내산 봉우리에 봉화를 올리어 기세를 드높였다. 그러자 일제군경은 주모인사를 조사하고 4월 15일 오후 제암리에 도착하여 주민들도 함께 교회당내로 강제집합시킨후 곧바로 모든 문을 밖에서 잠그고 불지른후 총을 쏘아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르는 한편 33호나 되는 제암리를 불태웠다. 이어 일제군경은 고주리로가서 주모자로 지목된 천도교인 가족등 6인을 결박하여 나무더미에 세워 총살하고 불을 질렀다. 그 유해는 가족에 의하여 장례가 치러졌으니 교회에서 희생된 23위의 유해는 가족도 접근할 수 없고 스코필드 캐나다 선교사가 일제군경의 감시속에 공동묘지에 장례지냈다. 이제 민족혼을 더울 새롭게 인식하고 민족적 자각을 높이기 위하여 민족수난의 현장도 국민교육의 도장과 민족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1982년 전두환대통령의 뜻에 따라 문화공보부에서 유해를 찾아 여기에 유택을 마련하였다. 이제 광복운동에 이바지한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며 민족혼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자 묘비를 세우노니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바친 영혼이시어 고이 잠드소서 1983년 4월 15일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현종 짓고 김응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