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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기 (당시23세) 화 장 1987년 성남 은행동 빈민협의회 결성 성남 하대원동 철거반대 투쟁참여 1990년 5월 17일 당국의 무책임한 철거를 막아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매어 운명 |45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성남은행2동에서 삭월세방을 전전하다 가족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강 제로 쫓겨나다시피 하여 오갈데 없는 막연한 상황에서 ’87년 3월경 은행2동 시유 지에 군용 텐트를 치고 전기도 없이 거주하였다. 그러던 중 성남 시청 철거반들의 악랄한 철거만행이 시작되자, 단신으로 맞서 철거반들의 온갖 협박과 철거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항거하였다. 이후 김철봉, 민선기, 강한철씨 등이 1178번지 일대에 움막을 치면서 철거는 더욱 강화되었으 며 동지를 비롯한 여섯 가구는 은행2동을 중심으로 빈민협의회를 구성, 김광수 목사를 구심점으로 하여 ’89년 하대원 철거반대투쟁에 연대 참여하였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공안 정국에 휩쓸리고 철거반대투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성남 시는 철거시책을 변경, 집단 철거를 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계고장을 발부하는 수 법으로 1178번지 일대에도 강제 철거 계고장 및 자진 철거 계고장을 4월 달부터 5월 18일까지 발부하였다. 수차례 철거 위협을 받고“이 지역이 철거를 당한다면 차라리 내 한목숨 버리겠다. 시장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말을 하면서 괴로워 하던 동지는 이웃 주민 민선기씨 앞으로 남긴 유서에 처와 자식을 부탁한다는 내 용과 13통 통장 앞으로는‘어려운 주민들인 만큼 철거를 막아달라’는 내용을 남 겼다. 또한 집안에 식량한톨 없고 외상도 거절당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괴로와 하다 17일 아침 등교하는 자녀들에게 공부 잘하라는 격려와 함께 아빠가 없더라 도 굳세게 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후 오전 9시쯤경 동지는 귀여운 자녀들을 위 해 손수 만들어 준 산속의 놀이터 그네 기둥에 전선으로 목을 매었다. 이 사건을 놓고 성남 시청과 동사무소에서는 부부싸움 끝에 자살한 것으로 매도함과 동시 에 차후 생계보장, 무철거를 내세워 유가족을 회유, 화장할 것을 권유하여 동지 의 처남으로부터 화장 위임장을 받아 5월 19일 성남화장장에서 화장으로 장례를 마쳤다. 인근 주민들은 이러한 성남시 은행2동 동사무소의 비인도적 처사에 분노하면 서 철거 반대 결사투쟁을 결의하고 동지의 뒤를 이을 것을 다짐하였다. 끝내살리라 |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