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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이런 단령은 조선시대 出土服에 여멈이 갚고, 옆 자락의 무는 二重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본 벽화에서 옆 트 抱의 품이나 폭이 좁기 때문으로 본다. 이 이를 “圓領缺將彩子"2이라고 王辰f委태L 전까지는 상류층의 것은 옆 트여있는데 품이 매우 넓어서 속이 노출이 확실히 드러나 보이는 이유는 抱이며,沈從文은 의하면 접히고 임의 남성용이었는데 러한抱는 다.27) 이처럼 중국 庸代에는 여자들에게까지 유행하여 男裝 女A이 많았 입게됨으로써 性구별이 애매해지고 사회기강이 해이해 남녀 구별이 없이 지자 土大夫여인들에게 입지 말 것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28) 그러나 계속 부터 하층계급까지 유행하자 官服으로 制度化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계속 宋代에는 낮은 계급의 관리와 女官들이 입었다.29) 우리 나라에서 團領은 입어 皇帝로 이어졌는데 삼국통일 이 조선말기에는 전부터 남성용 官服으로 받아들여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의 常服이었다. t홉궤뿔 때 민간들도 신랑의 예복으로 입기 시작하고 지금도 전통혼례를 할 때나 햄범을 드릴 때 입는 예복으로 남아 있다. 본 그림에서는 옆트임의 안쪽은 겉감이 살짝 뒤집혀서 붉게 보인다. 낄이는 종아리 중간까지 내려오고, 깃은 목에 바짝 올라가 있는데 이처럼 깃이 목에 받은 조선 전기 정도이며, 길이는 손등을 덮을 만큼 긴데 주름이 잡혀 있다. 허리에는 띠를 매고 있는데 활동하기에 적합하게 알맞은 들기 위하여 걷어 올려서 형이다. 소매는 손에 器物을 北西뿔의 2A 가운데 하나는 허리부분이 들고 있는 기물에 가려져서 확실히 알 수 없 고, 다른 하나는 띠가 허리선 밖으로 나온 점으로 보아 角帶일 확률이 많다. 한편 南東 lA은 北西뿔과는 달리 허리에 꼭 맞게 자연스럽게 대를 매었는데 布뿜으로 만든 뿔의 것같다. 꺼분뻐交領右찬-抱 : 마부 2A이 입고 있는데 옷 길이는 무릎정도로 내려온다. 여멈은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까지 깊게 여며 입고 있다 깃은 깃 길이 중심에 線이 하나 더 있어 二重으로 보인다. 이처럼 깃 중심에 線이 하나 더 있는 것은 조선시대 26) 앞책, r中國古代服힘!i1iff究J 179쪽. 27) 華梅, r中國服裝史J 42-43쪽 참조, 天律A民美術出版社, 天律, 1989. 대표적인 예로 홈깜렘夫A遊春圖, 宮樂圖, 執扁1:l::女圖, 홍!}ü훌莫高潤제5굴벽화, 樂!족懷夫A1l"香圖 등애 나타난다. 28) r舊홈書」 卷45, r與服志J 1957쪽 참조. 29) 앞책, r中國服節五千年服페!iJ 下, 275쪽 참조. 앞책, r中國古代服페史J 333쪽 참조 - 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