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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월남) 파병 결과 - 도약의 계기 1964년 7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8개월에 걸친 국군의 베트남파병은 한국 정부가 기대했던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국방 및 안보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당시 제3공화국 정부는 국군의 파병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면서, 미국의 원조를 얻어 굳건한 안보태세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 미국의 지원과 전쟁특수를 활용한 외화수입과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했던 한.미 안보동맹과 그 밖의 한.미관계가 상호협상의 관계로 변화되는 계기가 됐다. 다만 미국.한국 등 우방국이 지원했던 남베트남 정부가 그들의 철수 2년 후인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에 점령당함으로써 파병의 명분에 손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같은 사태는 한국 정부가 얻고자 했던 것을 대부분 얻은 후였기 때문에 파병의 의미와 자체가 변질되거나 퇴색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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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파병의 경제적 효과 - 오늘날과 같은 국가발전의 원동력 국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국내에 유입된 거액의 외화는 경제 사회발전의 바탕이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파병과 관련된 외화 수입은 미국의 군사원조와 전쟁특수, 그 밖의 간접효과 등은 포함하면 줄여 잡아도 50억 달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1965년, 장기간의 한.일협상으로 얻어낸 대일청구권자금이 차관을 포함해 총 8억달러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1963년 우리나라의 수출총액이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당시 50억 달러의 가치는 천문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효과는 외화의 유입으로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으며, 또한 정부 및 기업의 베트남 진출경험을 활용해 그 후 중동 진출 기틀을 직.간접적으로 국가발전에 미친 영향과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여 오늘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