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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봉의사 추모기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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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봉의사는 1894년 3월 3일 밀양군 상남면 마산리에서 출생 호적상 이름은 경학, 호는 수봉이며 부르는 이름은 최 수봉 본관은 경주였다. 밀양공립 보통학교 역사시험에 일본황실 모독죄 불온분자로 퇴학후 향리에서 한학을 배우다 15세에 사립 동화학교 입학, 명정학교로 학적을 옮겨 졸업, 1912년 동래 범어사 입산, 1913년 평양숭실학교에 입학 3년 수료하였다.
의사는 조국광복 운동에 불타고 있던중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함성이 터지자 석정 윤세주, 윤치성, 김병환, 이장수 등과 3월 13일 밀양장날 밀양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일본경찰에 쫓기는 몸으로 남만주, 봉천, 길림, 안동, 정주 사이를 왕래 독립자금 동지 규합 의열단에 가담 폭탄제조 기술을 익혀 동지 고인덕과 폭탄 제조하여, 동지 송혜덕에게 맡겨두고 행동할 기회를 보았다.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장 와타나베가 전 서원 훈시 중 폭탄 두발을 힘있게 투척 독립만세를 부르고 서문을 나와 부근 민가에서 자결직전 체포되어 수개월동안 모진 고문에 한명의 동지도 말하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동지의 이름을 말할까봐 혀를 깨물어 끊어 말 할수 없는 옥고를 치르고 1921년 7월 8일 하오 3시 대구 감옥교수대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부르고 사형집행 13분만에 승천하시니 방년 28세였다. 나라가 광복된 후 1963년 대한민국정부에서 건국공로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 유해는 마산리 공동묘지 가매장상태 1969년 10월 20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의사님의 조국독립을 위해 살신성인한 고귀한 정신을 길이 받들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 하는 참된 마음을 되새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