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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당시26세) 1963년 4월 5일 출생 경희대 행정학과 입학 1987년 2월 대한예장 청년회 전국연합회 서울동부지역 노회 총무 두란노 야학 활동 1989년 3월 26일 동료들과의 모임 끝난 후 면목동 행길에서 의식불명인 채 발견 1989년 3월 31일 운명 |45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장종훈 동지는 경희대에 입학하여 ’87년 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 동안 대한 예수교장로회(예장) 청년회 전국연합회 서울동부지역 노회 총무로 활동하며‘양 심수 석방’, ‘군부독재 타도’, ‘민중생존권 보장’등을 주장하며 삭발 단식 투쟁 을 벌이는 등 사회민주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두란노야학’(해뜰야학)에서 ’87년 1년 동안 노동자 고입검정고시를 위해 교육을 담당하면서 야학 교무 일을 맡아 보았다. ’88년에도 계속적으로 야학 월 례회의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89년 3월 26일 야학 동료들과 의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 길가에서 의식불명인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같은 달 31일 병원에서 연수마비 및 뇌좌상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경찰은 장종훈 동지가 길을 가던 중 대형차량에 의해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이라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당시 활동에 있어 경찰의 감시와 미행이 있었고, 동지가 수배 받은 사실이 있음으로 죽음에 의혹이 있다고 제기하였다. 이후 의문사위원회에서 조사했음에도 유가족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 사실 로 밝혀진 부분은 없었다. 그리고 의문사위원회는 동지가 야학 관련 모임을 끝낸 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이후 먼저 나와 귀가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하 였다고 판단하였다. 끝내살리라 |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