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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기 오호라 공은 불행히 이조말 쇠퇴할 때에 탄생하여 국가안위의 중책을 쌍견에 걸머지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던 중 안으로는 난신적자가 충만하고 밖으로는 왜구가 우리나라 내정을 간섭하여 강제로 원주진위대를 해산할 때에 공은 대의명분을 존중하므로 의기를 고양하고 항거 왜적 하니 가위 퇴파충만의 지주요, 경하의 거목이라. 공의 정충보국지대절은 후생의 보감이오, 조국광복의 기초이니 석호라 구국구민의 대지를 미성하고 신선순국하니 충혼의백이 의귀할 바가 없어서 치악야월과 봉천추우에 상필음읍방황이라. 후학은 군려의 직을 부하하고 마침 이곳에 부임하여 석일경모의 성으로 장병제군과 더불어 유해를 예장하고 또한 당지각군정 기관장의 찬조를 득하여 충혼탑과 충열정을 건립하고 제전을 치하여 춘추향사를 봉케해서 공의 충혼을 만분지일이라도 위로코자 하나이다. 단기 4287년(1954) 5월 13일 후학 육군준장 권준 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