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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례마을 유래 백촌 김문기 선생의 현손인 영사공께서 여섯째 아들 장수를 데리고 영동군 미그리에서 살다가 백촌 선생께서 단종 복위운동을 하시다 처형되자 삼족을 멸한다 하여 피난처를 찾아서 거창군 신원면 덕신리 매봉산 아래 근터에 숨어 지내다 웃터에 녀려오셔 거주하시다가 현마을로 내려와 자리 잡으셨다. 마을 앞 조상걸에 돌로 조상을 모셨으니 세월이 흘러 돌 모은 것이 수해로 얿어지자 마을 안정을 위하여 현제 마을 앞 당산에 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였다. 예전에는 조산말이라고 불렸으나 중유리 예동에 사시던 면우 곽종석 선생께서 연수사에 공부하러 다니시다 가끔 들리시면서 이 마을은 예을 꺠달았다 하면서 悟禮(오례)마을이라고 이름 지어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던 중 달산공파 종중 형덕공께서 어른들을 모신 자리에서 작은 서재를 지어 집안사람들에게 한학을 시키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니깐 윤권공을 비롯한 달신공파 종중 어른들께서 받아드리자 서재 터는 내가 희사하겠노라 하며 집을 짓게 되어 시작하자 목수분들이 집을 자꾸만 키워서 지어 그 광경을 지켜보시던 종파 상규공 계파 형장공께서 이렇게 할 것이 아니고 우리도 동참하여 덕은공파 종중서재를 세우자 간청하니 맏아들이 지금의 서원이 서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하여 모덕제 현판을 걸고 윤권 형장 형배 상규 영규공을 비롯한 종중 어른들께서 각 고을 선비를 모셔 유계를 치러 오던 중 거창에 이참사를 비롯한 유림선비님들이 본 손에 청하기를 단종 복위 운동을 하시다가 처형당하신 백촌 김문기 선생과 아드님이 아버지를 따라 자결하신 여병제 현석공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지어 제례를 지내자고 청하여 본손이 받아들여 사당을 짓고 모덕제 현판을 내리고 추원제 현판을 걸어 음 3월 中丁(중정)에 제례를 올리고 있던 중 인당 진석공께서 문화재 신청을 하여 1992년에 도문화재 191호를 지정받아 1994년도에 수리 보수하였다. 그리하여 1994년에 인당 진석공께서 오례서원으로 승격시켰다. 그 후 2006년에 뜻하지 않는 수해로 인하여 서원과 충의문 남문이 유실되어 문화재청에 복원하여 2008년에 완공했다. 지금 음력 3월 中丁(충정)에 제례를 올리고 있다. 그리하여 자손만대 기리 전하기 위하여 백촌 19세손 여러분이 기록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