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page

고정희(당시28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0년 12월 4일 전남 광주 출생 1979년 3월 연세대 전기공학과 입학 1981년 육군입대 1986년 1월 연대 전기공학과 졸업후 IBM입사(호주 파견근무) 1987년 3월 퇴사 후 연대 정외과 편입학 1987년 10월~12월 김대중 후보 당선을 위한 청년, 학생 단체인 민족통일애국청년단 중앙본부 기획위원회에서 50여일간 숙식하며 활동 1988년 1월 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각 언론기관에 부정선거에 관한 투서 및 미대사관에 투석 계획 1988년 3월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 연행 후 정신병원에 강제수용 1988년 5월 13일 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44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88년 1월 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백악관, 독일대사관 등에‘노태우 부정 집 권’을 고발하는 투서를 한 동지는 ’88년 3월 서초 경찰서 대공과 직원 2명에 의 해 연행되어 ’87년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내용의 투서를 청와대 등에 보낸 경위 등을 조사받았다. 동지는 조사를 받던 중 은평구의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 원되었다가 이후 강남 성모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5월 13일 오후 5시 40 분경에 병원 건물에서 떨어진 채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병원측의 주장에 따르면 동지는 사건당일 10층 정신병동 정문을 통해 나와 비 상계단을 이용해 9층으로 내려간 뒤 공사 중인 신축공사장 베니어판(구멍)을 뚫 고 나가 투신, 2층 구름다리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지의 가족들은 연행된 경위와 정신병동에서 치료받는 과정 등이 자 살로 보기 어렵고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조치 되었고 유서 가 발견되지 않는 등 자살 징후가 없었으며, 사고 현장 목격자가 병원 관계자 외 에는 없는 점, 사고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추락지점에 혈흔 등이 별로 없 었던 사실을 들어 의문을 제기하였다. ’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진상조사를 하였으나,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고정희 동지의 사인을 밝히지 않는 성모병원과 검찰을 규탄한다’는 유인물을 통해 동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였다. ‘애국 시민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의 자식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했을 때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만사를 제치고 자식의 죽음해명을 위해 뛰어 다닐 것입니다. 고정희 동지의 가족들은 이렇듯 자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병원 과 경찰은 물론이며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우리 유가 족들은 가만히 앉아 그들의 죽음을 맞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고정희 동지는 그 어느 한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고정희 동지의 사인규명을 위해 끝까지 단결하여 밝혀냅시다.’ 끝내살리라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