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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조직되었다. 광복회는 독립전쟁을 목표로 한말 의병계열과 계몽운동계열이 연합해 조직하였으며 박상진 의사가 총사령을 맡았다. 광복회는 국국회복과 공화주의 국가건설이 목적이었다. 먼저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을 치러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1910년대 독립운동이 방략이었던 독립전쟁론의 실현이었다. 광복회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폭동.암살.명령'이라는 투쟁강령과 '무력준비.무관양성.군인양성.무기구입.기관설치.행형부설치.무력전'을 행동강령으로 정하고 군대식으로 조직했다. 대구에 본부를 설치하고 상덕태상회.대동상점.안동여관 등과 같은 상점이나 미곡상, 여관 등을 설치해 활동거점으로 삼았다. 국내외로 조직을 확대해 만주와 8도에 지부도 설치했다. 광복회는 조직된 후 군자금 모집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그 방법으로 일제가 거두어들인 세금을 탈취하거나 일본인 소유의 광산을 공격해 자금을 확보하며, 부호들로부터 의연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전국으 부호들에게 의연금 모집 동고문을 발송하였다. 더불어 친일세력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의열투쟁도 전개했다. 경상도지부에서는 칠곡부호 장승원, 전라도지부에서는 친일부호 서도현, 충청도지부에서는 친일면장 박용하를 처단했다. 그러나 1918년 광복회원 대다수가 체포되면서 조직이 크게 와해되었으나 체포되지 않은 회원들이 1919년 3.1운동 후 주비단을 조직해 광복회를 계승 발전시켰다. 광복 후 생존 지사들을 중심으로 1945년 9월 광복회가 재건되어 산남의진 위령제를 거행하고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하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46년 해산되었다.